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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에 가족들(부모님 + 여동생)이 미국에 놀러왔는데, 자고로 베이 지역에 관광을 왔으면 응당 와이너리를 가야 하는 법. 이는 고구려의 수박도에도 기록되어 있다. 다만 방문 일정이 일주일 정도로 짧고 부모님께서 시차적응을 얼마나 잘하실지 몰라 미리 예약을 해두진 못했다. 다행히 시차적응은 곧잘 하셔서 바로 가볼 만한 곳 탐색을 시작했다.
고려해야 할 점이 몇가지 있었는데, 가족들이 평소에 와인을 깊게 즐기는 편도 아니고 와이너리 방문도 처음이라 와인 자체의 맛보다는 체험하기 좋거나 풍경이 예쁜 곳 위주로 좀 더 살펴보았다. 어차피 취향에 안맞을 수 있어도 엄청 맛없는 곳을 가지는 않을거라… 또 투어/테이스팅비에 대한 저항이 좀 있어서 waive가 되는, 즉 테이스팅 후 와인을 거기서 사면 테이스팅비만큼 깎아주는 경우 가산점을 줬다. 마찬가지 이유로 테이스팅비가 100달러 이상인 곳은 탈락. 작년에 갔을 때 너무 관광지스러운 곳(베린저)은 가이드 투어에 낀 기념품 상점마냥 너무 자본주의의 향기가 강해 이런 곳도 좀 피해보려고 했다.
구글과 마일모아 같은데서 열심히 검색해보며 후보를 많이 모았는데, 작년에 살펴봤던 스털링 (케이블카 있는 곳)이나 도메인 카르네로스 (샴페인), 아니면 유명한 로버트 몬다비 / Far Niente / Stag’s leap (파리의 심판!) / Opus one 도 있었고 와인은 애매하지만 피크닉을 할 수 있다는 V.sattui 나 다 좋은데 가는길이 좀 험하다는 Pride 도 있었다. 하지만 결국 최종적으로는 (1) 내가 좋아하는 Caymus 와 (2) 지인이 추천해준 Hendry 로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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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케이머스를 처음 알게 된 계기는 좀 독특하다. 어느 웹소설에서 주인공 일행이 황량한 사막을 건너다 행상인을 도적들에게 구해줘서였던가? 아무튼 보답으로 술을 받았는데, 갑자기 나타난 견제 세력의 우두머리가 그 술상을 보고는 “케이머스, 캘리포니아 와인치고는 먹을만한 와인이지. 이런 교역상이 가지고 다니기엔 비싼 와인인데... 저 상인이 너에게 진심으로 고마운가 보군.” 이런 대사를 치는 것이다! 마침 나는 캘리포니아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장을 보러 갔을 때 와인 코너에 케이머스가 있는지를 찾아 보았고, 홀푸즈에 팔고 있다는걸 알게 됐고, 마셔봤더니 달짝한게 아주 마음에 들었다. 와인을 좋아하는 지인이 그때 같이 있었는데 소설속 대사랑 비슷하게 미국 와인치고는 괜찮군ㅋ 이런 반응을 했던 것도 같다 (물론 친구가 사온 70달러짜리 와인을 혹평하기는 쉽지 않은 노릇이다).
케이머스가 엄청나게 유명한 메인스트림이라는 것도, 너무 잘 알려진 나머지 반골 기질이 있는 사람들에게 비판도 자주 받을 정도라는 것도 나중에 알게 되었다. 한번은 회사에서 프로젝트 성공적으로 끝낸 기념으로 회식을 갔었는데, 그때 프로젝트 리드분이 어떤 와인이 좋냐고 하셔서 sweet 한 걸 선호하는 편이라 답했더니 그럼 케이머스 괜찮아? 라고 하신게 인상깊게 남아 있다.
어쨌든 케이머스는 여타 와이너리와 비슷하게 웹사이트(Tock)에서 예약을 할 수 있었는데, 2인이랑 5인은 빈 슬롯이 있고 3인이나 4인은 없다고 나오길래 이메일로 문의했다. 그랬더니 가능한 날짜는 있는데 확정은 전화로 해야 한다고 답장이 와서 전화로 예약 완료. 전화할 때 투어비는 얼마냐고 물어봤더니 우리는 투어는 없고 테이스팅만 있다고 딱 잘라 정정해주더라. 가족들이랑 브런치 먹으러 가서 메뉴 나오는거 기다리는 시간동안 밖에 잠시 나가 전화로 예약하고 들어오려고 했는데, 뭔가 대화가 잘 안돼서 전화를 몇번 다시 거느라 시간이 끌렸다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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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드리는 지인이 추천해준 곳인데, 다른 와이너리들이랑은 다르게 정형화된 루틴을 따르는게 아닌 실제 포도밭에 가서 포도를 따먹기도 하고, 완전 기초부터 설명해주는 친절함이 있다고 했다. 여기는 예약 사이트가 없길래 이메일로 문의하니까 바로 오전 슬롯 하나가 가능하다고 답장으로 왔다. 근데 케이머스랑 같이 가고 싶어서 좀 더 물어보니까 오후 슬롯도 있다고 해서 그걸로 결정! 제일 가고 싶은 곳 두개 다 한 날짜에 예약할 수 있게 되다니 완전 러키비키자나🍀.
나파갈 때는 항상 점심을 어찌 해야 하는지가 고민이기 때문에 두 테이스팅간 간격을 최대한 띄우려고 해봤다. 그 결과 케이머스는 오전 9시반 시작, 헨드리는 오후 1시 시작으로 꽤나 괜찮은 시간대로 구성할 수 있었다. 케이머스 일정이 끝난 뒤 나파 다운타운에서 점심을 가볍게 해결하고 헨드리로 이어지는 동선이면 크게 서두를 일도 없이 무난하게 다닐 수 있겠다는 계산이 섰다.
마지막으로 투어 당일 출발을 몇시에 해야 하는지 역산을 했는데, 알고보니까 출근 시간대에는 길이 막혀서 집에서 케이머스까지는 원래 생각했던 1.5~ 2시간이 아닌 최대 2시간 반까지 걸릴 수 있다더라? 그런 연유로 집에서는 오전 7시에 출발해야 했고, 그말인 즉슨 기상은 오전 6시 근처에 해야 했다 주륵... 낮술을 하기 위해 새벽 기상을 하는 어른이 되어버리다니… 심지어 가는 길에는 구름이 잔뜩 끼어 있었고 오클랜드쪽 건너가는 다리에서는 아예 비가 오기까지 했다 서로 다른 기상 이슈가 각각 발생. 다행히 나파에 도착할 때쯤에는 많이 개서 하늘이 꽤 잘 보였다. 와이너리 투어는 풍경 감상이 칠할이니 날씨가 좋아 정말로 다행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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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머스 프로그램은 투어가 아니고 테이스팅이라고 강조한대로, 말 그대로 예쁜 테이블에 둘러 앉아 가져다 주는 와인을 앉은 자리에서 차례로 시음하고 내부 건물과 바깥 정원은 안내없이 셀프로 둘러보는 식이었다.
따로 코스 선택없이 일괄적으로 인당 50달러 테이스팅을 진행하려고 했는데 불상사가 생겼다. 동생이 20대 초반인데 여권이 없어서 테이스팅에 참여를 못하게 된 것! 사진으로 찍어둔거나 모바일 신분증도 전부 안되고 실물 신분증만 인정해준다고 해서 부모님 2인으로 진행하게 되었다 (본인은 운전해야 해서 제외). 규모도 큰 곳이고 관광객도 많으니까 프론트에서는 딱 매뉴얼대로 해야 한다는 느낌? 괜히 책잡힐일 만들면 골치아파질테니 이해가 되는 부분이다. 그래도 테이스팅 도중 한 모금씩 나눠 먹어보는 건 전혀 신경쓰지 않더라.
테이스팅 순서는 다음과 같았다.
- Sea Sun 샤도네이
- Walking fool (Caymus-Suisun)
- 케이머스 까쇼 (나파외 지역 생산), 런칭한지 2년 정도 됐다고 들었다.
- 케이머스 까쇼 (나파 생산, 제일 유명한거)
- 케이머스 special selection.
나는 조금씩만 뺏어먹어봐서 잘 모르겠지만 아빠 왈 나파외지역은 너무 가볍고 special selection 은 너무 진해서 본인 취향에는 well known 인 나파생산 까쇼가 가장 맞으시다고.
한잔씩 주시면서 케이머스 레이블 아래에 있는 여러 브랜드에 대한 설명, 5대째 이어진 가업인데 각 레이블마다 몇대의 누구가 만들었는지 등에 대한 설명을 열심히 해주셨다. 시간에 쫓기는 느낌은 없었고, 느긋하게 마시면서 얘기할 수 있는 정도의 진행 속도였다. 설명이 영어여서 양해를 구하고 한두문장을 말씀하시면 내가 한국어로 가족들에게 말해주는걸 반복했는데도 아주 여유로웠다.
또 재밌던 점은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 같은걸 설명할 때 거리를 얘기하게 되는데, 먼저 마일로 말했다가 킬로미터로 바로 덧붙여 말하는 점이 뭔가 글로벌 관광객을 많이 상대하며 쌓였을듯한 노련함이 느껴져 재밌었다.
테이스팅이 모두 끝나고 나서 기념품으로 케이머스 50주년 각인이 새겨진 와인잔을 줬는데, 테이스팅은 두명만 했는데도 가족 인원수에 맞게 잔을 네개 주셨다. 심지어 잔을 담는 종이백에 ‘감사합니다’ 라고 한글을 동생은 테이스팅 못하게 돼서 꽤나 우울한 표정으로 시작했었는데 와인잔 들고 사진 한장씩 찍으면서 점점 얼굴이 피더니 잔을 받자 아주 함박 웃음을 지었다 ㅋㅋㅋ. 사실 동생의 목표는 와이너리에서 예쁜 사진을 찍는 것이지 (이걸 위해 어디서 꽃다발도 하나 사와서 내내 들고 다녔다;;) 와인 맛을 즐기는게 아니었기 때문에 오히려 테이스팅피 안내도 돼서 이득이 아니냐고 좋아했다. 하지만 waive 되는 금액 이상으로 샵에서 와인을 사갔기 때문에 딱히 이득은 아니었다...
코스 진행해주시는 직원분 센스가 또 좋았던 점이 잔을 담는 종이백에 ‘감사합니다’ 라고 한글로 적어주시기도 하고, 와이너리에 직접 방문하면 시중에는 없는 진판델도 있다고 들어서 샵에 가면 살 수 있냐고 여쭤보니까 시음 리스트에 없는데도 병을 가져와 한잔 주시기도 했다.
샵에 가면 이렇게 여러 빈티지를 팔고 있다.
샵이랑 와이너리 내외부 구경을 하다 점심을 먹으러 나파 다운타운으로 향했다.
(2편에 계속: https://wwiiiii.tistory.com/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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