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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iiiii.tistory.com/32 에서 이어짐)

오전에 케이머스 투어를 마치고 점심을 먹기 위해 나파 다운타운에 있는 슈퍼두퍼로 향했다. 개인적으로 인앤아웃은 좀 건강한 느낌이고 파이브가이즈는 너무 느끼한 느낌이라서 슈퍼두퍼를 가장 좋아한다.

왠지 케이머스에서 산 와인을 차에 그냥 두면 변질될 것 같아 옆에 있는 트레이더조스에서 보냉백도 하나 새로 샀다. 와인은 어차피 살 거였는데 왜 차에 어떻게 둘지 생각을 안하고 왔을까 🙄🙄 또 한창 유행하던 트조 미니 토트백이 있어 '오? 드디어 입고가 됐나 보네 집에 돌아가면 사야지'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그냥 지나쳤는데, 아니나 다를까 집 근처 트조에는 전부 품절이었다. 기회가 생겼을 때 잡았어야 했는데!

뭐 어찌 되었든 헤매지 않고 헨드리에 잘 도착했다. Brown Winery Building 으로 오라고 해서 케이머스마냥 큰 건물이 있을 줄 알았는데 굉장히 아담한 사이즈의 건물이었다. 차에서 내리자 뭔가 쪼꼬만 치와와를 닮은 (성격이 나빠 보인다는 뜻) 강아지가 엄청 경계하면서 짖었는데, 직원들의 Stop! 이라는 일갈을 듣고 물러났다.

테이스팅은 건물 안에 들어가지 않고 입구 바로 앞에 놓인 예쁜 야외 테이블에 착석하면서 시작됐다. 잘 짜여진 프로세스대로 진행하는 느낌인 케이머스나 여타 와이너리와 다르게 굉장히 캐주얼한 분위기로 진행되었다. 테이스팅을 시작하면서 하는 말이 "우리는 맛을 미리 설명하지 않는다, 맛을 강요하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하고 네가 느끼기에 맛있는 게 맛있는 와인인 거다. Small Business 기 때문에 격식 없이 진행할 것이다, 맛있으면 맛있는 거고, 맛없으면 그냥 버리면 된다." 여서 예감이 좋았다. 아까 본 강아지가 생각나서 Good puppy라고 한마디 거드니까 "아니다 (손님에게 짖었으니) bad puppy다"라고 받아치시는 것까지 친근한 분위기였다.

이런 느낌의 야외 테이블에서 진행.

우리가 신청한 테이스팅 코스는 Red Wine Flight (샘플러라고 안하고 Flight라고 많이들 하는 듯)였고 로제 와인으로 시작했다. 아버지 평으로는 아주 가벼운 느낌이라고. 마침 가벼운 와인에서 점점 무겁고 복잡한 향이 나는 순서로 진행할 거라고 안내도 해주셨다.

로제 와인.

그 다음인 피노 누아의 어원에 대해서도 설명해주셨는데, 뜻은 Black Pine 이고 포도가 솔방울처럼 맺혀서 검정 소나무라고 이름지었다는걸 처음 알게 되었다. 이번에는 바로 옆에 있는 포도밭에 다같이 걸어가 포도를 한알씩 먹어보며 비교도 하고, 지나가는 길에 옆에 있는 블랙베리 덤불에서 베리도 하나 따서 먹고 같이 자라던 로즈마리에 손을 비벼 향도 맡아보았다. 이런 체험식 운영은 처음 봐서 너무 신기하고 재밌었다. 그리고 와이너리 라벨에 그려진 꽃은 블랙베리 꽃을 뜻한다고 하더라. 설명에 따르면 피노 누아가 일정하게 퀄리티를 유지하면서 생산하기 까다로운 품종인데, 여러 블록에서 나무를 키워 섞어 쓰는 식으로 품질을 유지한다고 했다.

피노 누아.

또 외부 인력을 고용하는 다른 와이너리랑 다르게 와인을 수확할 때 12명 정도의 인부들이 전부 손으로 딴다고 한다. 새 품종등을 실험해보는 작은 면적의 텃밭이 있는데 그정도는 3시간만에 다 수확할 수 있다고. 포도를 먹을 때 처음엔 씹지 말고 지긋이 누르며 먹어보라고 하고, 그 다음에는 씨와 껍질의 맛에 주의하며 씹어 먹어보라고 해서 시키는대로 했더니 "씹어 먹으면 쓴 맛이 나지? 우리는 이게 와인에 들어가는걸 원치 않기 때문에 손으로 따는거야" 라고 설명해줬다. 기계로 수확한 뒤 Crush 해버리면 이 쓴맛이 나는 부분도 섞여 들어간다고 한다. 또 본인들 품질 기준을 만족하는 포도는 1차 수확이 끝났고, 지금 남아 있는 포도는 나쁘진 않지만 본인들 와이너리에서 쓰진 않을거라고. 이걸 쓰면 Good Wine 정도는 만들 수 있겠지만 자기들은 Excellent Wine 을 만들 것이므로 쓰지 않는다고 한다..

가까이 가보면 이렇게 포도가 예쁘게 열려 있다.

그 다음으로는 프리미티보와 진판델을 각각 주면서 맛을 비교하게 해주었다. 웬만한 품종들은 다 직접 생산해서 와인을 만드는데, 프리미티보만 UC Davis 에서 재배한 것을 떼와 와인을 만든다고 했다. 엄마와 동생은 진판델이 더 달고 맛있다, 아빠는 진판델이 좀 더 진하다 라고 평하셨다. 실제로 한입 뺏어 먹어보니 둘이 확연히 다른 맛이 났다. 혹시? 해서 빈티지를 물어보니 프리미티보는 2021, 진판델은 2020이었다. 다만 포도밭이 오래될수록 과실은 적게 열려도 더 농축된 맛이 난다고, 그리고 프리미티보 대비 진판델이 더 오래된 밭에서 온거라 같은 빈티지다로 not-so-subtle difference 가 있었을거라고 추가 설명을 해주셨다. 근데 이탈리아에서 자라면 프리미티보고 미국에서 자라면 진판델 아닌가? UC Davis 에서 키운걸 왜 프리미티보라고 부르는건지는 모르겠다. 

이렇게 비교할 수 있게 주셨다.

또 엄마는 진판델에서 후추향 같은게 난다고 하셨는데, 이게 Spicy 내지는 Peppery 하다고 묘사하는거랑 비슷한 결을 느끼신게 아닌가 싶다. 아빠는 뭔가 맛이 잔잔해서 좋다고 하셨는데, 이걸 영어로 뭐라 통역해야 되는지 좀 헤매고 있으니까 설명해주시는 분이 '영어로는 맛이 Angular 하다 vs. Round 하다 라고 표현을 하고, 헨드리에서는 Round 한걸 추구한다'고 거들어주셔서 하나 배워갔다.  

진판델.

그 다음으로는 레드 블렌드. 5가지 다른 품종을 블렌드해서 사용한다고 한다. 너무 진한 맛이 나 부모님 취향은 아니라고 하셨다. 블렌드에 멋있는 이름을 붙이는 다른 곳들과 다르게 여기는 그냥 깔끔하게 RED라고 네이밍해서 약간 엔지니어스럽다는 느낌이 들었다. 다른 얘긴데 이때쯤부터 부모님이랑 동생은 기분이 좀 좋아보였다 ㅋㅋㅋㅋㅋㅋ.

그냥 "RED".

또 신기한 걸 하나 주셨는데, 딴지 10일~2주쯤 된 아직 와인이 되는 중인 포도 주스를 주셨다. 생각보다 굉장히 드라이하고 와인 같은 질감이라 신기했다 (맛이나 향은 아니었지만). 뭔가 기름기 있는 음식을 먹을 때 그걸 씻어내는 역할은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정도? 여기서 2년은 더 묵어야 와인이 된다고 한다. 처음 줬을 때는 무슨 우유 같은걸 섞어서 준 줄 알았다. 와인잔 스템을 잡고 빙빙 돌리는걸 해보면 와인은 자국이 투명하게 남는데 얘는 불투명하게 남는다.

그 다음은 까베르네 프랑. 까쇼만큼 유명한 품종은 아니지만 최근에 인기를 얻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까베르네 소비뇽. 아까 품종도 그렇고 둘 다 이름이 까베르네로 시작하길래 피노 누아처럼 특별한 뜻이 있냐고 여쭤봤는데 얘는 특별한 어원은 없다고 했다. 부모님께서 까베르네 프랑보다는 까쇼가 더 맘에 든다고 하셨고, 케이머스 까쇼랑 비교했을 때는 비슷한 느낌이라고 하셨다. 사실 둘이 가격도 비슷하다.

좀 더 궁금한게 있냐고 해서 진판델 다시 마셔볼 수 있냐고 했더니 아까 테이스팅한 것 말고 다른 블록에서 재배한 진판델로 만든걸 가져다 주셨다. 이번거는 서로 다른 두 블록에서 생산한 진판델을 사용했다고 하는데, 아빠는 큰 차이를 모르겠다고 하셨고 엄마는 이게 더 낫다고 하셨다. 동생은 '아 맛이 다르네요' 라는 말을 하고 싶었는데 영어 실력 부족으로 "The other one! (다른거 또 가져와! 쯤의 뉘앙스)" 를 외치는 사태가 발생. 설명해주시던 분이 유쾌하게 Which of seven? 이라고 받아쳐주셨고 나는 하루종일 놀려먹었다 ㅎ.

그 뒤에 정말 마지막으로 가져오신건 알바리노(Albarino) 라는 처음 듣는 품종을 쓴 주정강화 와인이었다. 설명해주시는 분이 알기로는 해당 품종으로 주정강화 (fortified) 를 하는 와이너리는 자기들밖에 없다고. 나빼고 셋 다 취해가지고 포도밭을 살짝 산책하도 돌아왔다. 의외로 포도밭 상공에 매가 굉장히 많았다. 테이스팅을 할 때는 우리 가족밖에 없었는데 돌아오고 나니 다른 두 파티가 생겨 있었다.

포도밭.

매가 날아다닌다.

?ㅋㅋㅋㅋㅋ

여기도 케이머스처럼 waive가 돼서 까쇼, 진판델 (single block), 부모님을 위한 주정강화 와인을 구입. 영수증에 팁 란이 있길래 $30 정도로 적었다. 맨 처음 경계하던 강아지 말고 다른 큰 강아지도 있었는데 얘는 큰 애답게 성격이 처음부터 좋았다. 손을 핥고 난리남. 맨 첨에 우릴 경계했던 작은 친구도 그새 낯이 좀 익었는지 짖지도 않고 와서 슬슬 눈치보면서 얌전하게 굴었다. 카운터에서 기념품이라고 와이너리 펜도 주시고, 다음에는 운전하는 친구랑 같이 와서 나도 마시라고 덕담? 도 해주셨다 ㅋㅋ

포도 수확철이라구 각 품종별 포도를 이쁘게 장식해두었다.

 

전반적으로 설명을 읊어준다기보단 정말 대화를 하며 진행해서 만족스러웠다. 딱 Friendly 하다는 느낌? 와이너리 오너분 철학도 좋았는데, '내가 맛있게 마실 와인을 내가 만들자', '진판델이나 프리미티보 중에 뭐가 맛있냐고? 내가 지금 마시고 있는게 더 맛있는 쪽이다', 'Opus One 처럼 굳이 비싸게 팔 필요가 있나' 등등.

마지막으로 혹시 집에 돌아가는 길이 멀어 와인이 변질될까 싶어 나파 트조에서 냉동 식품 몇개를 좀 더 사 넣은 다음 귀환했다.

소비를 위해 사온 목록! 선물용 케이머스 까쇼들은 옆에 곱게 포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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